역사상 제일 강력한 '죽음의 숙녀' 여성 스나이퍼


역사상 최고의 명사수들은 대부분이 세계 2차대전때 등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루드밀라 파블리첸코입니다. 남녀통합랭킹 22위, 여자 저격수 랭킹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죠. 전설적인 저격수를 뽑자면 남자는 누가뭐라해도 핀란드의 시모해위해 이고, 여자는 루드밀라 파블린체코라고들 합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키예프대학의 평범한 역사학도 였으나, 1941년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키예프에 있을 당시 사격클럽 회원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저격수 훈련을 받았고 하네요. 저격수가 된 것도 사격클럽 회원증을 꺼내든 그녀의 자원이었다고 합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가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로 불리는 그녀가 저격수로 활동한 기간이 고작 10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단 10개월만에 공식집계로만 309명을 사살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중 187명은 두 달 반만에 저격에 성공했고, 36명은 적군의 저격병이었으니 그녀의 닉네임이 'Lady death(죽음의 숙녀)'로 불린게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녀가 최고라고 불렸던 이유는 사용했던 총기에도 있습니다. 루드밀라의 총기는 1930년대 소련에서 개발한 SVT-40으로 중국과 북한에서도 사용한 총이기도 합니다. 충격적인건 사실 이 총은 저격용총이 아니라 소총이라는 사실. 전쟁당시 여군저격수들이 노리쇠 조작을 불편해했기 때문에 조준경을 달아 저격총으로 사용을 했기 때문이죠. 사실상 저격용 총으로는 최악의 총으로 평가 받고있기 때문에 그녀의 기록이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사실상 저격수로 은퇴를 하게된 계기는 1942년 박격포 피격으로 인한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교관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양성했습니다. 소련 당국에서는 당시 영웅으로 불리던 그녀를 전장에서 잃는 것 보다 교관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아군의 사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녀는 키예프대학으로 돌아가 역사학도로 학업을 마쳤으며, 해군에서 연구원으로 계속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은퇴를 한 이후에도 노병위원회 등에서 활동을 하는 등 그녀는 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저격수로 살았습니다. 그녀를 기리기 위한 우표도 발행되었으며, 최근에는 루드밀라의 삶을 그린 영화도 개봉이 되었었습니다.




소련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총 2000여명의 여성 저격수를 배출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살아 돌아온 인원은 500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의 활약이 압도적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한 저격수들도 많았는데, 사실상 역사적인 여성 저격수 10위까지는 모두 소련군 소속이라고하니 당시 여군의 활약상도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공적을 인정받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초대받아 소련인으로는 최초로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을 접견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41년 참전당시 그녀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고, 1974년 10월 5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러시아 관광명소로 유명한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최근 여성 징집으로 화제가 되었던 노르웨이여군입니다. 세계 최초로 창설된 여성 특수부대라고 하는데, 소련의 여군부대와 같이 과거 전쟁에서 영웅이라 불리던 여전사들이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과연, 그때와 같은 영웅적 인물들이 탄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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